어쩌지요, 가을이 간다는데 / 김용화
어쩌지요, 가을이 간다는데
무수한 낙엽의 말
귀에 들리지도 않아요
가을 숲엔 온통
공허한 그리움만 남아
마음 천지사방 흩어지네요
열정도 잠시 묻어야 할까봐요
잠실라면 괜찮을텐데
마음 동여맬 곳 없네요
어쩌지요, 가슴 저린 말들
쏟아 놓고 가을이 간다는데
잠시 고개 묻을
그대 가슴이라도 빌려야 겠네요


진안고원길 6구간 '전주 가는 길'은 부귀면 세동리 메타세콰이어길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봉암리의 주화산을 거쳐 거석리의 부귀면행정복지센터까지 총거리 12.9km로 이어진다
9시 30분쯤 지난 5구간 종착지였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동안 사진 촬영하는 시간을 갖고 탐방을 시작한다.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Metasequoia 街路樹길)
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잠동에서 큰터골까지 1km에 이르는 진안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은 호젖한 드라이브 코스를 즐기려는 사람과 사진 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진안군의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곳의 메타세콰이아 가로수는 1986년부터 2004년까지 식재된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로 알려진 곳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인 곳으로 담양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을 비롯하여 서울 월드컵공원, 춘천 남이섬, 옥천군 화인산림욕장,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 그리고 이곳 진안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등을 들수 있겠다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 중의 하나인 담양의 메타세콰이아 가로수는 1975년도에 식재되었다고 한다
각종 SNS에 올라오는 진안 메타세콰이아 길 사진을 보면 약간의 둔덕과 완만한 곡선이 있는 이 지점이 대표적인 촬영 포인트였던 것 같아 비슷한 사진을 남기고 싶었는데 정작 당일에는 일행들의 뒷모습을 담느라 이 지점을 지나가는 줄도 몰랐다.ㅠ
역시 좋은 사진은 아무나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안고원길 6구간 코스 지도대로라면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 중간 데크길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가로수 길을 벗어나 들녘 건너편의 웅치골(신덕)마을을 들렀다 가야 하는데 무심코 갈림길을 놓치고 지나쳐 버렸다
자세히 보니 나만 웅치골(신덕)마을 진입로를 놓친게 아니라 일행들 모두가 마을 진입로를 지나쳐 데크길을 따라 올라가고 있다. 아마도 일부러 웅치골(신덕)마을을 포기하고 메타세콰이아 길을 따라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얼마 후면 길은 합쳐지니까~ ^^
이곳 메타세콰이아 가로수 길은 영화 "국가대표" , 드라마 "내 딸 서영이", "보고싶다", CF "아우디코리아" 등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침엽수는 보통 상록수인데 반하여 메타세쿼이아는 특이하게도 침엽수이면서도 가을에 잎이 떨어졌다가 봄에 새잎이 나는 낙엽수라고 한다
웅치골 사거리
정상 코스대로 웅치골(신덕) 마을을 들렀더라면 이곳에서 다시 메타세콰이아길(모래재路)과 다시 합쳐졌을 것이다. 웅치는 곰티재의 한문식 표기로 진안에서 전주로 넘나들던 진안과 완주의 경계에 있는 고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웅치골 마을 풍경
메타세콰이어길 좌측 들판 너머로 산기슭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웅치골 마을(신덕 마을)'이 보인다
웅치전투
임진왜란 웅치전투는 1592년 7월 8일(음력) 웅치 고갯길에서 전주부성 점령을 위해 넘어 오는 왜군에 맞서 조선 관군과 의병이 합심하여 치뤄진 전투이다.
웅치전투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은 왜군은 전주부성을 점령하지 못하고 철수하였는데,
결국 같은 날 해상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육상의 '웅치전투' 승리로 인하여 곡창지대인 호남지역이 보전되어 훗날 전쟁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안내도는 ‘임진왜란 웅치전적’에 대해 간락하게나마 알려준다. 1592년 7월 8일, 왜군은 웅치방면으로 대대적인 공격을 개시한다. 전장에는 의병장 황박이 최전방을, 나주판관 이복남이 제2선을, 김제군수 정담이 정상에서 최후 방어를 담당했다. 새벽부터 시작된 전투는 저녁 무렵 화살이 떨어진 조선군이 ‘안덕원’으로 후퇴하면서 일단락된다. 하지만 김제군수 정담과 휘하의 병력은 웅치에 남아 끝까지 항전했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정담을 비롯해 종사관 이봉·강운 등 대부분의 병력이 전사하고 웅치는 왜군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이들의 용맹에 감동한 왜군은 전사한 아군의 시체를 모아 길가에 큰 무덤을 만들고 ‘조선국의 충성스런 넋을 위로한다(弔朝鮮國忠肝義膽)’라고 적은 푯말을 세우고 지나갔다고 한다. 아무튼 웅치를 넘은 왜군은 7월 9일 전주 부근까지 진출했으나, 웅치전투에서 입은 피해로 전력이 약화되어 있었고, 남원에서 돌아온 동복현감 황진이 그런 왜군을 안덕원 인근에서 격파했다. 하나 더. 이 전투의 승리와 한산대첩이 있었기에 호남지방이 보전될 수 있었고, 이는 임진·정묘 왜란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고원길은 웅치골 사거리에서 도로(모래재로)를 벗어나 우측의 큰터골 마을길로 들어간다.
큰터골 마을회관, 경로당
마을회관 앞에서 좌측길로...
큰 도로를 벗어나 마을길을 따라 걷는 구간은 약 2백여 미터 쯤 되겠다
마을길을 빠져나오면 다시 '모래재路'와 합류한다. 그런데 가로수가 메타세콰이아에서 은행나무로 바뀌어 있다. 노랗게 물들었을 때의 은행나무길은 또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
운장산은 여기서 꽤 먼 거리에 있는데 쌩뚱맞게 운장산 진입 표시가 왜 여기에 있나? 했더니 음식점(운장산 가든) 진입로 표시이다.^^
웅치골 사거리에서 약 4백여 미터 지점에 '큰터골' 버스정류장이 있다. 노란색 시내버스가 단풍으로 물든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더 없이 한가롭게 보인다
'진미 가든'
'진미 가든'은 송어요리 전문점으로 이 지역에서는 꽤 많이 알려진 '로컬 맛집'이라고 한다
오리와 닭백숙 전문 '수목원 가든'.
전주에서 가까운 지역이라서 그런지 꽤 규모가 있는 음식점들이 많이 눈에 띤다
큰터골 버스정류장에서 약 4백여 미터를 이어가면 '구름재 박병순'의 생가가 있는 '적천마을'이 나온다.
웅치골(신덕) 마을, 큰터골 마을, 적천 마을은 모두 부귀면 세동리의 자연 부락이다
구름재 박병순 생가(진안군 부귀면 세동리 적천마을)
박병순(朴炳淳, 1917-2008)은 스승인 ‘가람 이병기’에 이어 한국현대문학사에 시조의 가치와 의미를 대중적으로 확장시키기 위해 정열을 쏟은 인물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 시절 ‘시조집’을 몰래 배포하다 일본 경찰에 잡혀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최초의 시조 전문지 ‘신조’를 발간하고, ‘가람동인회’로 활동하면서 시조시인으로서 한국시조사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박병순의 생가. 1917년에 태어나 1939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나라 사랑도 남달랐는데, 집 둘레에 무궁화를 심고 ‘한글보급운동’에도 힘을 쏟았다고 한다.
고원길은 적천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시 도로를 벗어나 세동천을 따라 이어지는 농로를 걷는다.
이렇게 둘레길은 지름길이 있더라도 천천히 돌아가야 맛이 난다? 성질 급한 사람은 복장 터질 노릇이다.ㅎ
농로길을 3백여 미터 지나 다시 모래재길로 올라선다
어느덧 가로수는 다시 메타세콰이아 길로 바뀌어 있다
적천저수지 제방 옆에 붉게 물든 단풍이 또 가는 발걸음 멈추게 한다
적천저수지
88올림픽 기념숲
10:38. 모래재휴게소
전주공원묘지
주화산 호남정맥 분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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