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주가 참 빠르게도 지나간다
벌써 외씨버선길 여섯 번째 길 조지훈문학길을 걸으러 가는 날이다
산악회 버스를 타려면 늦어도 아침 5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아직도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여 집을 나서는 일이 쉽지 않다
외씨버선길 6코스는 영양전통시장에서 출발하여 삼지수변공원~노루목재~금촌산길~영양향교~이곡교를 거쳐
우리가 지금 걷고 있는 '외씨버선길'이라는 이름의 모티브가 된
'승무(僧舞)'라는 시를 쓴 조지훈 시인의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까지 가는 약 13.5km의 여정이다
영양전통시장 ▷ 영양향교
외씨버선길 6코스(조지훈문학길)는 영양전통시장에서부터 주실마을까지 약 13.5km의 구간이지만
오늘은 편의상 번잡한 읍내길 약 1km구간을 생략하고
영양교육지원청과 영양경찰서 중간 지점인 삼지수변공원 입구에서부터 탐방을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시작점에서 단체 기념사진 찍고 완만한 경사의 도로를 따라 야생동물 이동통로?를 밑을 통과하니
잘 조성된 수변공원이 나온다
수변공원 안에 있는 '파대저수지' 뒤로 이곳 영양에서는 보기 드물게 제법 널찍한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들녘 건너편에 '하담고택'이 자리잡은 삼지마을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가 걷는 외씨버선길은 고택이 있는 삼지마을을 통과하지 않으니 카메라의 힘을 빌어 '하담고택'을 당겨 보니 이케 생겼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하담고택(荷潭古宅)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 공을 세워 '자헌대부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사월 조임(沙月 趙任)의 손자 조시벽(趙是壁)이 1710년경 지은 것으로
그의 후손인 조선 후기의 학자 하담 조언관(荷潭 趙彦觀)이 이곳에서 태어나서 그의 호를 따 하담고택(荷潭古宅)으로 불린다고 한다
공원 안 파대저수지 모퉁이에 자리잡고 앉아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부엉이의 카리스마가 장난 아이네~

부엉이 눈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게이트볼장 옆길을 따라 이동한다
버들강아지도 노랗게 움을 트고...하기야 경칩이 지나고 다음 주면 춘분이니...
춘분을 전후하여 농가에서는 봄보리를 갈고 논밭을 갈며 들나물을 캐어먹는다고 하였으니
이제 나뭇가지에 움이 트는걸 신기해 할 시기도 아니다
아직은 황량하게까지 보이는 널찍한 게이트볼장에서 삼삼오오 모여 게이트볼을 하는 모습이 여유롭고 한가하다
외씨버선길은 게이트볼장을 지나 널찍한 배수로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이어진다
'삼지수변공원'은 영양읍의 오래된 자연습지인
파대지(項池, 바대못), 탑저지(蓮池, 탑밑못), 원당지(澗池, 원댕이못) 3개의 연못을 연결하여 조성하였는데
파대지(坡大池)는 '영양고추연테마공원', 탑저지(塔底池)는 '삼지연꽃체험장', 원당지(元塘池)는 '자연 그대로의 휴양공간'으로
가꾸었다고 한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산수유
영양군에서는 수변공원을 만들면서 콘크리트 수로와 인공구조물을 헐어내고 3개의 자연습지를 잇는 2.7km의 인공배수로를
자연정화형 수로로 복원하고 주변에 폭 50~100m 정도의 녹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운치 있어 보이지만 낡아 건널 수 없는 다리
건너편 산자락에 고즈넉히 자리잡은 집이 그림처럼 한가롭다
수로변으로 이어지던 버선길은 31번 국도와 맞닿은 지점에서 우측으로 올라선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저수지 제방으로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도로(31번 국도)다
약간 경사진 길을 따라 올라 도로 밑 지하도를 지나 연지저수지(탑밑못)으로 향한다
봄이 되어 새싹이 돋아나니 탐방길에 볼꺼리, 얘깃거리가 많아졌다
멋진 길
연지(탑밑못) 제방의 멋진 노송군락
제방에 서 있는 노송군락 못지않게 멋진 자태를 뽑내고 있는 저 나무는 느티나무인가? 버드나무인가?
한여름에는 바로 옆 노송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될 수 있겠다
탑밑못(塔底池) - 연지저수지
탑밑못(塔底池)은 영양읍 하원리에 있는 원댕이못(元塘池)과 삼지1리에 있는 바대못(坡大池)과 함께 영양의 삼지(三池)중에 하나이다
저수지에 연꽃체험장이 조성되어 여름이면 노송 그늘 아래서 저수지 안에 가득 찬 연꽃을 바라보며 멍 때리는 것도 좋겠다
어쩌면 내가 자주 찾는 수원의 '서호저수지' 제방에 서 있는 노송길을 걷는 기분도 든다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 '연지마을(삼지2리)'이 보인다
연지마을은 '탑저리(塔底里)'라고도 하는데 이는 마을 뒷 산인 '옥산' 중턱에 과거 영혈사(靈穴寺)에서 모전석탑(模塼石塔)을 세우면서
'탑 아래 마을'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
저수지를 지나면 삼지2리(연지) 마을이다
연지마을 앞에 서 있는 수령 약 150년 된 느티나무 - 1982년 11월 '보호수'로 지정
둘레길을 걷다 보면 각 코스마다 1~2 그루의 '보호수'를 보게 되는데
보호수는 어떻게 지정이 되며 우리나라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몇 그루나 될까?
보호수(保護樹)
보호수는 역사적·학술적 가치 등이 있는 노목(老木), 거목(巨木), 희귀목(稀貴木) 등으로서 특별히 보호할 필요가 있는 나무를 지칭하며,
그 중 보존 가치가 있는 명목(名木) ·보목(寶木) ·당산목(堂山木) ·정자목(亭子木) ·호안목(護岸木) ·기형목(畸型木) ·풍치목(風致木) 등이 해당되는데
보호수의 지정 및 해제 등은 산림보호법 규정에 따라 시 ·도지사 또는 지방산림관리청장이 지정하고,
우리나라에 보호수로 지정된 나무는 약 15,000 그루가 있다고 한다
| 명목(名木) : 성현, 위인 또는 왕족이 심은 것이나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이 있는 이름 있는 나무 보목(寶木) : 역사적인 고사나 전설이 보배로운 나무 당산목(堂山木) : 산기슭, 산정, 마을입구, 촌락 부근 등에 있는 나무로서 부근에 제를 지내는 산신당, 성황당 등이 있는 나무 정자목(亭子木) : 향교, 서당, 서원, 사정, 별장, 정자 등에 피서목이나 풍치목으로 심은 나무 호안목(護岸木) : 해안 또는 강 및 하천을 보호할 목적으로 심은 나무 기형목(畸型木) : 나무의 모양이 정상이 아닌 기괴한 형태의 관상가치가 있는 나무 풍치목(風致木) : 풍치, 방풍, 방호의 효과를 주는 나무 |
어쨌거나 저쨌거나 연지마을 뒤로하고 '노루목재'를 향해 발길을 옮긴다
연지저수지에서 뭉그적대다 보니 일행들은 모두 떠나 버리고 또 혼자가 되었다.^^
혼자 넉 놓고 걷다 '노루목재' 진입로를 한참 지나쳤다 되돌아 오고...
'노루목재' 가는 길은 연지마을(삼지리) 버스정류장에서 포장된 도로를 따라 약 150미터 쯤 오른 후
버선길 표지목이 서 있는 지점에서 우틀하여 산으로 올라 서야 한다
'노루목재' 가는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는 특이할 것 없는 평범한 산길이다
군데군데 나무들이 쓰러져 있어 녹음(綠陰)이 짙어지면 '원시의 숲' 분위기가 날 수도 있겠다.
노루목재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밀집된 소나무 숲이 나오고...
정상에는 두 개의 평상이 놓여 있다. 더울 때 이 길을 지나갔더라면 평상에 누워 한잠 자고 싶은 유혹을 떨치기 어려웠겠다.^^
이제 오늘 걸어야 할 전체 거리의 약 4분의 1쯤 걸었다
'노루목재'에서...
노루목재를 내려서면서 일행들과 많이 떨어진 것 같아 조금 속도를 내어 걸으려고 했더니
요즘들어 자주 느끼고 있는 옆구리 통증이 재발하여 달래가며 천천히 걷고 있는데......오잉?
뜻하지 않게 귀한 봄꽃 '노루귀'를 만난다
아하~!
방금 전 노루목재를 지나왔는데... 노루가 드나들어 '노루목재'가 된게 아니고 '노루귀' 꽃이 많아 '노루목재' 된건가?
시간 여유가 있었으면 주변에 이쁜 노루귀가 더 있는지 찾아보았겠지만
오늘은 올해들어 처음 노루귀를 영접한 걸로 만족하고 자리를 뜬다
숲을 빠져나오면 반변천이 흐르는 영양읍 상원리 '논두들마을'이 나온다.
마을길로 걸어가고 있는 일행들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온다
논두들마을로 내려서는데 전방에 깎아지른 절벽이 보여 가깝게 당겨 보니 생김새가 애사롭지 않다
저기가 영양군의 명소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척금대'인 것 같다
척금대(滌襟臺)
일월면 곡강리에 위치한 척금대는 예부터 경상북도 영양군의 자연경관 중의 하나를 꼽으라면 의례히 거론되는 명소 중의 하나로
약 100여 미터의 기암절벽과 푸른 강물(반변천)이 어우러져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몰리는 곳이라고 한다
1692년((숙종18년) 현감 '정석교'가 여기서 시회를 열었을 때 척금대(滌襟臺)라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표지목에서 완주 인증사진 찍고 우측 방향으로 이동한다
이곳 반변천이 끼고 도는 곳에서도 멋진 단애를 볼 수 있다
논두들마을에서 빠져나와 평평한 포장도로를 걷고 있는데 이곳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분께서 반변천 쪽에서 올라오시더니
여기서 반변천을 바로 건너 외씨버선길을 지름길로 갈 수 있다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신다.
과거에는 외씨버선길이 상원3리 '무드리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논두들마을 앞에서 반변천 징검다리?를 건너 '망운정'이 있는 '곡강마을' 을 지나 '금촌산길'로 바로 이어졌었는데
반변천 물이 불어나면 징검다리가 자주 물에 잠기거나 유실되어 '상원교'를 지나 '무드리마을'로 우회하는 새로운 길이 생겼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은 반변천 물이 줄어들어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으니 지름길로 가라고 안내해 주셨던 것 같다.
사실 그 당시에는 그런 지름길이 있었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당연히 먼저 간 일행들을 따라 새로운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둘레길(외씨버선길) 걷기는 지름길을 버리고 돌아서 멀리 걷더라도 체력과 시간만 허락된다면 더 많은 것을 보며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억울하지는 않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걸었던 길을 복기하면서 살펴보니 마을 주민이 가르쳐 준 지름길로 갔으면 곡강마을에 있는 '망운정'과 '척금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놓지고 와서 많이 아쉽다
- 논누들마을 앞 지름길 -
분홍색 길이 우리가 걸었던 외씨버선길이고, 노란색 길이 논누들마을 앞에서 반변천을 건너 가는 지름길이다
반변천 징검다리? 잠수교?
곡강마을 느티나무
망운정(望雲亭)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9호
이 정자는 망운 조홍복(趙弘復, 1773~1841)이 건립한 정자인데, 1826년 어머지의 묘소가 있는 이곳에 '자식이 부모를 사모한다'는 뜻의 망운정을 지어 아침, 저녁으로 묘소를 바라 보았다 한다.
조홍복은 문장이 뛰어나 도산시회(陶山詩會)에서 3일간 장원하였으며, 1807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성균관에서 공부하기도 하였으나
부모님 사망 후 벼슬에 뜻이 없어 학문에만 전념하며 후진양성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다시 가던 길을 이어가자

와~ 냇가에 노송 한 그루가 서 있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확 다르네~
저 자리에 노송이 서 있지 않았더라면 그저 밋밋하고 평범한 냇가 풍경이었겠다
전방에 반변천을 이어주는 상원교와 상원3리 무드리마을이 보인다
외씨버선길은 상원교를 건너 직진하여 누드리마을로 올라서 상원3리 마을회관 앞에서 다시 좌틀하여 이어지게 된다
세상에나~세상에나~ 연약한 새싹이 단단한 아스팔트 포장길을 뚫고 나오네~

벌써 새싹이 돋아난 사료밭 풍경은 아직은 주변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해 다소 생뚱맞게도 보이지만 푸른 초원 위를 걸어 보고싶은 마음이 들기도...^^
영양에 내려와 외씨버선길을 걷다 보니 어디를 가나 마을 뒤에는 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소위 명당(明堂)이라는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이 아닌 곳이 없으니...나도 영양에서 태어 났으면 지금보다 훨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상원교를 건너며 몇 번이고 맑은 물이 흐르는 반변천을 보고 또 보고...
태어나 자란 곳은 높은 산이 없는 평야지역이다 보니 농수로 외에는 이렇게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하천을 보며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여행을 다니며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하천을 보면 쉽게 눈길을 뗄 수가 없다
여름이었더라면 도저히 그냥 지나치지 못했으리라
영양군의 특산물이 고추라지만 군데군데 사과밭도 많이 눈에 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그림
어디선가 얼룩무늬 젖소가 풀을 뜯고 있을 듯한 풍경
상원3리 마을회관 앞
우리처럼 외씨버선길 탐방을 하러 온 듯한 젊은이들이 정자에서 시끌벅적 밥을 먹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어울려 여행다니는 모습은 부럽기도 하고 좋아 보인다
상원3리 마을회관 앞에서 좌틀하여 몇 걸음 옮기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상원3리 마을 풍경
폐가인 듯 하나 왠지 운치있어 보이는 집도 보고...
조그만 연못도 보면서...
아스팔트 길을 걷다 보면 ...금촌산길로 들어서는 입구가 나온다
금촌산길 입구
도로에서 우측 산길로 올라선다
오잉??? 여기에도 완주 인증 촬영장소 표시가 있는 표지목이 서 있다. 안내도에는 없었는데...분명 공식 인증장소는 아니다
못 보고 지나칠 때도 많은데 봤으니 일단 찍어 놓자.
나중에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도 촬영 장소가 보이면 습관처럼 휴대폰에 담아 놓는다. 걷는 재미를 느끼기 위해...^^
금촌산길 입구에서 보니 '척금대'가 가깝게 보이기는 하는데 응달지고 앞에 장애물들이 많아 명성에 걸맞지 않게 그저 평범한 동네 앞산이다...뛰어가서 보고 올 수도 없고...
금촌산길 입구에서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함께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영양항교가 있는 일월면 소재지 방향으로 출발한다
금촌산길은 완만한 오르내림이 있는 평범한 산길이다
낙엽송 군락도 보이고...
양심장독대가 있어 두껑을 열어 보니 생수 한 병이 들어 있다.
금촌산길을 벗어나면 일월면 곡강리 장천서원마을이 나온다
꽃다지
일월면 곡강리 장천서원마을 풍경
산수유
캬~ 이 풍경 너~무 좋다
우리가 생각하는 둘레길은 마을을 끼고 있는 산과 들 사이를 걷는 바로 이런 길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금촌산길을 벗어나 곡강교까지 이어지는 이 길이 '6코스 조지훈문학길'에서 가장 아름다운 둘레길이었다고 생각한다
말냉이
곡강교
곡강교는 하류쪽 척금대가 있는 곡강리 마을 안쪽에도 있는데 이 곳의 곡강교는 최근에 놓인 듯하다
곡강교를 건너니 버스 정류장이 서 있고...
지나온 곡강교
반변천을 중심으로 지나온 일월면 곡강리와 일월면사무소가 있는 일월면 도계리로 나뉜다
곡강교에서 일월삼거리까지는 31번 국도 옆으로 데크길이 놓여 있어 멋진 주변 풍경을 보며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일월면 도계리와 곡강리 사이를 흐르는 반변천 일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신록의 계절이 돌아왔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일월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발원한 반변천(右)과 장군천(左)은 일월면 도계리 일월초등학교 앞에서 합류한다
장군천은 일월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일월면 도곡리·가곡리 ·주곡리를 지나 도계리에서 반변천과 합류하는 하천이다
31번 국도변 데크길을 걷다 일월삼거리로 직진하지 않고 S-oil 주유소가 있는 지점에서 천변길로 내려와 일월교 방향으로 걷는다
도계리 일월교 방향에서 보는 곡강리 장천서원마을 풍경
일월초등학교 앞 별나루터 버스 정류장
일월면사무소
일월면사무소를 지나자마자 보이는 '영양향교' 표지석이 서 있는 지점에서 좌측 길로 올라 서면 영양향교가 보인다
향교 가는 길
영양향교 ▷ 이곡교 ▷ 지훈문학관 ▷ 주실마을
☆ 일월면 도계리 향교마을 ☆
면사무소가 있는 일월면 소재지에서 약간의 언덕길을 올라서면 '영양향교'가 있는 향교마을이다
향교마을에서는 영양향교를 비롯하여 '수월헌', '사의정사', '충의정사' 등의 고택들이 있다
향교마을(kakaomap)
영양향교(英陽鄕校)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이 건물은 조선 숙종 9년에 처음 건립된 건물로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은 처음 건립할 때 세웠고, 이후 육영루(育英漏), 동서무(東西廡), 동서재(東西齋) 등을 차례로 건립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철거되었다가 지금은 명륜당·대성전·신문(神門) 등이 육영루 대신에 건립한 문랑(文廊)과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영양향교 전경(퍼온 사진)
향교는 출입문인 육영루의 문이 잠겨있어 들어가 보지 못하고 퍼온 사진으로 향교의 전체 배치 상태를 짐작해 본다
앞에서부터 육영루 대신에 건립하였다는 문랑(文廊) - 명륜당(明倫堂) - *내삼문(內三門) - 대성전(大成殿)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내삼문(內三門)은 향교 안에 설치되어 있는 3칸인 문을 말하는데 향교나 서원의 출입문을 셋으로 나누어 만든 것은 신의 출입과 사람의 출입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3개의 문 중 중앙은 신문(神門)이고 양쪽의 문은 인문(人門)이라 하는데,
신문은 평시에는 닫아 두는 것이 상례이고, 인문은 열어 두어 사람들이 출입할 수 있는 문으로 출입할때는 東入西出이라 하여 동쪽으로 들어가서 서쪽으로 나와야 한다
육영루(育英樓) 옆에는 하마비(下馬碑)가 서 있다
하마비에는 대소인원하마비(大小人員下馬碑)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대인 소인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는 뜻이다
하바비는 보통 궐문, 능묘, 문묘, 서원 등의 입구에 세우는 비석으로, 향교 역시 문묘에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공간으로 여겼기 때문에 하마비가 세워졌다
향교는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 못하고 담장 밖에서 빼꼼히 넘어다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던 명륜당(明倫堂)
향교는 공자와 우리나라의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공교육기관이지만
대부분 갑오개혁 이후 향교의 교육적 기능이 상실되고, 현재는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 있다
가장 왼쪽 끝에 있는 건물이 선현에 대한 제사를 담당하는 대성전(大成殿)이다
향교 밖에 설치되어 있는 화장실
영향향교의 부속건물
영양향교를 둘러본 후 사과밭을 사이에 두고 자리잡은 '수월헌'으로 향한다
수월헌(水月軒)
수월헌은 수월공 조유(水月公 趙儉, 1570~1664)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어 영남북부 유림들이 뜻을 모아 공의 사후에 건립한 정자이다
공(公)은 조모를 지성으로 봉양한 비리동효행(飛鯉洞孝行)으로 나라로부터 복호(復戶)의 은전을 받은 효자이며,
임진왜란 때는 약관으로 의병장 곽재우의 의진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병자호란을 당해서는 이미 늙은 몸이라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자 집 뒤에 단(壇)을 쌓고 전승을 하늘에 축원함으로써 축천단충절고사(祝天壇忠古事)를 남겼다
이 정자는 원래 출생지였던 영양읍 상원리에 세웠던 것이나 퇴락하여 후손이 1922년에 종택 사의정사 근처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으며, 2005년에 전면 보수하였다
수월헌 앞에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와 연못이 있다
수월헌을 뒤로 하고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의 종택인 사의정사로 이동한다
참판공종택(사의정사)
사의정사(思義精舍)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5호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의 종택
참판공종택은 한양조씨의 영양 입향조(入鄕祖)인 조원(趙源)의 종택으롤 350년 전에 건립되었으나, 2002년에 기존의 종택을 철거한 후 현재의 모습으로 중건하였다.
수월공(水月公) 조검(趙儉, 1570~1644)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끝난 후 이곳 도계리(道溪里)로 들어와 집을 짓고 사의정사(思義精舍)라 편액(扁額)하였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思義精舍'라는 편액이 걸린 잘 지어진 한옥이 깔끔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종택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 반 규모의 ㅁ자형 정침이다.
사의정사 안에 핀 꽃잔디
종택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장을 둘렀으며, 좌측 담장 사이에는 3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세워 종택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한양조씨 종택의 향나무 - 보호수
2003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이 향나무는 수령이 약 380년 되었으며, 병자호란 때 수월공 조검이 한양조씨 영양 입향조의 종택을 건립하면서 기념으로 식대하였다고 전해진다
조동흥가옥(趙東興家屋)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조동흥가옥은 원래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후손인 한양조씨 18 세손 조관빈(趙觀賓)이 숙종 45년(1719)에 건립한 조선시대 고옥이다
현재의 가옥은 1899년에 중건된 것으로 보여지며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에 투신하였던 조종호가 1977년에 중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충의정사(忠義精舍)라는 편액이 걸린 사랑채가 서 있고 안채로 들어가는 문은 잠겨있어 들어가 볼 수 없어 밖으로 나와 건물의 외관만 둘러보고 지나간다
일월면 도계리 '향교마을'의 고옥들을 둘러 보고 향교길을 따라 외씨버선길 6코스 종점이 있는 도계리 '배골마을'로 이동한다
배골마을로 이동하다 뒤돌아 보니 '충의정사' 뒤쪽 언덕의 작은 숲이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향교마을과 배골마을은 일월면 도계리의 가까운 이웃마을이다
도계리 향교마을에서 배골마을로 이동하다 향교마을을 뒤돌아 보니 언덕위에 멋진 교회(일월교회)가 보인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자리 잡은 시골 예배당의 모습이다
☆ 배골(梨谷)마을 ☆
향교마을에서 약 5분 정도 걸으니 배골마을이 나온다
씨앗용 옥수수
배골마을 정자. '梨谷쉼터'라고 쓰여 있다. 배골=梨谷으로 풀이된다
배골마을 삼거리. 삼거리에서 우측길은 다음 구간에 걷게 될 '영양연결길'이과 좌측길은 오늘 탐방길의 종점인 '이곡교'와 '지훈문학관'으로 가는 길이다
무심코 다음 구간인 우측길로 들어서려다 돌아서 좌측길로 향한다
다음 구간에 걷게 될 '영양연결길'
'지훈문학관' 방향으로...
다시 지나온 향교마을에 서 있는 교회 건물을 돌아 보고..
이곡교(梨谷橋). 외씨버선길 6코스 조지훈문학길의 종점이다
이곡교에서 완주 인증사진 촬영을 하고 선택구간인 조지훈문학관이 있는 '주실마을'로 향한다
이곡교에서 바라본 배골(이곡)마을 전경
햇살을 받은 31번 국도의 가로수는 있는 그대로 봄의 풍경이다
'주실마을'로 가는 길은 장군천변을 따라 이어진다
길이 좁은 곳에서는 수로 위에 데크를 깔아 길을 만들었다
주실마을로 가는 길은 맑은 물이 흐르는 장군천을 보면서 힘들이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소나무 숲길이다
오래전 이 길을 따라 서당에 가고 있는 어린 조지훈의 모습이 그려진다
주실마을이 가까워지면서 길은 다시 데크길로 변한다
장군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시인의 숲'으로 불리는 '주실마을 숲'이 자리잡고 있다
녹음이 우거지면 방문객들에게는 아름다운 휴식처겸 시원하게 걸을 수 있는 건강한 산책코스가 될 수 있겠다
주실마을 숲
영양에서 봉화로 가기 위해서는 주실마을을 지나야 하는데 주실숲은 길목에 위치하여 마을을 살짝 가려주고 열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원래 천연림이었으나 100여년 전에 숲의 서북쪽 밭을 구입하여 마을 주민들이 소나무를 보식하는 등 오랜 세월 지극 정성으로 가꾸어 현재 규모의 숲으로 확장되었다.
숲으로 들어서면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져 있으며 '2008년 제 9회 아름다운 마을 숲' 대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 주실마을 ☆
지조 있는 선비들의 고향,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선 중기 때 환란을 피해 이곳으로 와 정착한 한양 조씨들의 집성촌으로서 1630년경 호은공 선생이 이곳에 터를 잡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전경이 배 모양이라 하며, 산골등짝이가 서로 맞닿아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주실(注室) 또는 주곡(注谷)이라 부른다.
이 마을은 실학자들과의 교류로 일찍 개화한 마을이면서, 또한 일제 강점기의 서슬 퍼런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지조 있는 마을이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과 입향조 호은공의 증손자인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옥천종택,
조선 영조 49년(1773)에 후진 양성을 위하여 건립한 월록서당 등 문화자원들이 그대로 남아 있으며, 지훈문학관과 지훈시공원, 시인의 숲 등 또 다른 볼거리가 가득하다.
주실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월록서당'의 화장실이다.^^
'월록서당'은 주실마을 동쪽 첫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월록서당(月麓書堂)
이 건물은 조선 영조(英祖) 49년(1773)에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隣, 1658~1737)의 손자인 월하(月下) 조운도(趙運道, 1718~1796)와 만곡(晩谷) 조술도(趙述道) 가 발의하고
한양조씨(漢陽趙氏), 야성정씨(野城鄭氏), 함양오씨(咸陽吳氏)등이 추축이 되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이 서당에서 공부한 이들 가운데 많은 석학(碩學)과 명현(名賢)들이 배출되었으며 조지훈 시인도 어릴 때 월록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다고 한다
월록서당 화장실
월록서당을 뒤로 하고 조지훈 문학관으로 이동
조지훈 문학관으로 이동하다 뒤돌아 보니 '주실마을 숲(시인의 숲)'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지훈문학관
청록파 시인이자 지조론의 학자 조지훈 선생을 후세에 길이 기리기 위해 건립한 문학관이다.
조지훈 선생의 부인 김난희 여사가 직접 현판을 쓴 문학관을 들어서면 170여 평 규모에 단층으로 지어진 목조 기와집이 'ㅁ'자 모양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조지훈의 대표적인 시 '승무'가 흘러나오고, 동선을 따라 조지훈 선생의 삶과 그 정신을 살펴볼 수 있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문학관 내부로 들어가 여러가지 전시물들을 보지는 못하고 건물 겉모양만 휘리릭~
이렇게 둘러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승무(僧舞)
지훈뜨락
승무관
'지훈시공원'은 올라가려다 시간 관계상 포기하고...
'송의재(松義齋)'라고 쓰여 있는데...
주곡교회. 건물이 특이하여 담아 보았다
조지훈 본가(趙芝薰 本家), 방우산장(放牛山莊)
이 가옥은 청록파 시인이자 국학자인 조지훈(趙芝薰, 본명 東卓, 1920~1968년)이 유년시절에 살던 집을 원형에 가깝게 복원해 놓은 것이다
조지훈은 1920년에 호은종택(壺隱宗宅)에서 출생하였으나 부친인 조헌영(趙憲永, 제헌국회의원이자 한의학자)을 따라 1936년에 상경할 때까지 성장기를 이 집에서 보냈다
조지훈의 일가가 떠난 이후 이 가옥은 여러 사람들이 거쳐 살면서 많이 훼손되어 상당기간 폐옥으로 남아 있던 것을 2010년에 복원하였다
방우산장(放牛山莊)은 조지훈이 생전에 방우산장기(放牛山莊記)라는 수필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집에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안채와 화장실만 호젓하게 서 있다
방우산장은 호은종택의 뒷쪽에 자리잡고 있다
방우산장에서 노랗게 피어있는 산수유꽃을 보면서 토석담장을 끼고 마을길을 내려서니 바로 아래 '호은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호은종택의 옆 모습(서쪽)
호은종택(壺隱宗宅) - 경상북도 기념물 제78호
이 집은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이며, 대표적인 한국 현대시인이고 국문학자였던 조지훈(1920~1968)과 그의 형 조세림이 태어난 곳이다
주실마을 한복판에 있으며, 조선 중기 인조조에 입향조(入鄕祖) 조전(趙佺)의 둘째아들 정형(廷珩)이 창건하였다.
이 집은 경상도 북부 지방의 전형적인 양반가(兩班家)의 모습을 하고 있는 'ㅁ'자형 집으로 정침(正寢)과 대문채로 나누어진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7칸이며 정면의 사랑채는 정자 형식으로 되어 있고 서쪽에는 조지훈 선생의 태실(胎室)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되어 있고 솟을대문이 있다. 6·25전쟁 당시 일부가 소실되었으나 1963년 복구되었다.
대문채
정침 - 사랑채
태실(胎室)
정침의 뒤쪽 안채 옆에는 화장실이 자리 잡고 있다
창고와 대문채
호은종택의 옆 모습(동쪽)
<낙화>
|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어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
옥천종택, 창주정사 가는 마을길
창주정사(滄洲精舍)
창주정사는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이 문하생을 가르치던 곳이다
창주정사는 한옥 스테이로 운영되고 있어 출입문에 '외부 관람객 출입금지' 표지판이 붙어 있다
창주정사 앞에서 보는 주실마을 전경
창주정사는 높은 곳에 자리 잡아 전망이 좋다.
'창주정사'에서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옥천종택'이 있다
옥천종택(玉川宗宅)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2호
이 집은 한양 조씨 옥천(玉川) 조덕린(趙德鄰, 1658-1737)의 고택으로, 17세기 말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덕린은 조선 숙종 17년(1671)에 문과에 급제하고 교리(校理)와 동부승지(同副承旨) 등을 역임하였다.
이 집의 구조는 살림채인 정침(正寢)과 글을 읽는 별당인 초당(草堂)과 가묘(家廟)인 사당(祠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옥천종택 역시 창주정사 처럼 한옥 스테이를 하고 있어 종택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옥천종택의 별당인 초당(草堂)
옥천종택 앞 정자
학파헌(鶴坡軒)
주실마을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학파헌은 조운도(趙運道, 1718~1796)의 손자인 조성복(趙星復, 1772~1830)이 지어 공부하던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의 작은 정자다
조성복은 직접 농사를 지으며 가학을 이어나간 인물로 학덕을 고루 갖춘 선비였다고 한다
학파헌의 현판은 정약용의 글씨인데 진품은 후손이 따로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평생 은거한 조성복에 대해 정약용은 그가 시대를 잘못 만났기 때문이라며 한탄했다고 전한다.
주곡리 마을회관
주실마을 앞을 흐르는 장군천 건너편에서 보는 주실마을 전경
주실마을을 이곳저곳을 주마간산으로 대충대충 돌아보고 마을 앞을 흐르는 장군천을 가로지르는 주실교를 지나오는데 천변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두 개의 정자가 보인다
'만곡정사'와 '침천정'이다
만곡정사(晩谷精舍)
주실마을의 서쪽 천변에는 옥천종택을 지은 조덕린(趙德隣)의 손자 조술도(趙述道)의 정자인 만곡정사(晩谷精舍)가 자리잡고 있다
'만곡정사'는 1790년 영양읍 원당리(元塘里) 선유굴(仙遊窟) 위에 건립한 강정(江亭)을 문하생들이 주곡동으로 옮겨 미운정(媚雲亭)이라 하였고, 그 뒤 현 위치로 옮겨 만곡정사(晩谷精舍)라 하였다
침천정(枕泉亭)
'만곡정사'의 맞은편 천변 언덕 위에는 '침천정'이 고즈넉하게 자리잡고 있다
침천정은 만곡선생 조술도(趙述道)의 제자로 벼슬을 진사(進使)까지 지냈다는 조언유(趙彦儒)의 정자로 '강물이 정자 아래로 쏟아져 내려와 물소리가 들린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란다
문필봉
탐방을 마치고 우리를 태워다 줄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가는데 삼각형의 '문필봉'이 보인다.
주실마을의 대부분의 집들은 이 문필봉을 마주하고 있는데, 풍수가에서는 문필봉이 정면에 있으면 공부를 잘하는 학자가 많이 나온다고 한다.
오후 3시 30분 주실마을 앞 주차장에 도착함으로써 오늘의 여정을 마친다
지도상 거리 : 13.5km
트랭글 거리 : 15.6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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