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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레길여행

(2025.02.15) 진안고원길 11구간, 용담호 물길

오늘은 진안고원길 11구간 '금강 물길'을 걷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11-1구간 '강동벼룻길'의 탐방거리가 3.7km 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라서 별도의 날을 잡아 진행하기에도 어중간하여 오늘 하루에  두 개의 구간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한다.
탐방거리는 11-1구간 3.7km를 추가하는 대신에 11구간의 초반 용담면사무소~가족테마공원 2.6km를 제외함으로써 전체 탐방거리는 약 17.1km 정도가 되어 당초 예정된 탐방거리와 비슷하다

진안고원길 11구간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진안군 용담면에서 안천면으로 이어 걷게 되는 코스이다

전체 탐방코스 : (11-1구간)감동마을~섬바위~(11구간)가족테마공원~용담댐물문화관~구곡마을~장등마을~도라마을~중배실마을~하배실마을~망향의동산~안천소운동장(17.1km)


 

금강물길 탐방코스 : 가족테마공원~용담댐물문화관~구곡마을~장등마을~도라마을~중배실마을~하배실마을~망향의동산~안천소운동장(13.4km)

신용담교를 건너 11구간과 11-1구간이 교차하는 용담가족테마공원에 들어서니 시간은 오전 10시 20분을 지나고 있다

9시에 탐방을 시작하였으니 감동벼룻길 3.7km 구간 탐방시간이 1시간 20분 걸린 셈이다

 

공원에 들어서자 십이지신(十二支神像) 해시계 광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처음 해시계라는 생각을 못했을 때는 가운데 있는 저 물건은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궁금했었다.^^

가족테마공원의 바닥에 깔아 놓은 블록은 위에서 보면 용의 문양이라고 한다 

<퍼온 사진>

11구간  첫 번째 인증장소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웬 위령비?

위령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위령비에 대한 사연은 알 수 없다. 용담댐 건설과 관련된 위령비인가?

용담댐 오르는 계단. 제법 길고 경사가 있다

<작품명 : 왜 인간의 발길이 가는 곳은 쓰레기 천지인가>

용담댐 정상부에 올라서면 고철을 이용하여 제작한 철재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되어 있는 모든 작품들이 아트디렉터이자 귀촌 작가인 '이웅휘'씨가 제작한 것들이란다

<작품명 : 산행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철재계단 설치는 환경에 역행위다>  

공도교(公道橋)?

공도(公道)는 사도(私道)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는 도로이니 공도교(公道橋)는 공도상에 있는 다리를 일컬음인데......

여기서 공도교(公道橋)는 용담댐 수문 위에 설치된 다리를 말하는 듯싶다

댐 정상부(공도교)는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까지만 개방하고 있단다

용담댐 수문 입구

▼ 용담댐 정상부에 전시된 조각작품은 모두가 이웅휘 작가의 작품인데, 2012년에 환경을 주제로 한 101점의 철제 조각품 전시를 시작으로 이후 200여 점과 강돌 작품 170여 점을 추가로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아트디렉터이며 설치미술가이자 조각가인 이웅휘 작가는 예대에서 조각을 전공한 후 세계를 누비며 열정을 불태우다가 양평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화재로 모든 것을 잃고 지금은 고향 금산 근처인 이곳 용담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용담댐 위에서 시야를 좌측으로 돌리면 용담면의 행정 중심지인 '송풍리 문화마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마을의 뒤쪽으로 보이는 산들은 진안군 용담면과 금산군 남일면의 경계를 이루는 성덕봉~갈미봉~구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일 것이다 

댐 위 쉼터에서 점심을 겸한 요기를 하고...

초등학생들의 작품인 듯...

진행 방향으로 댐 건너편에는 진안군 안천면과 무주군 부남면의 경계를 이루는 지장산(773.6m)이 우뚝 솟아 있다

수몰민들의 애환이 담긴 용담호

용담댐 위에서 보이는 용담호는 과거 용담면 월계리(우측)와 안천면 삼락리(좌측) 주민들이 살던 곳이다

용담면 월계리와 안천면 삼락리는 용담댐 건설로 마을과 농지가 거의 대부분 수몰되어 현재는 수몰 주민들이 새로 조성한 월계마을(월계리)과 장등, 구곡마을(삼락리)만 남아 있다고 한다

용담호의 돌고래 떼.^^

분명 다른 느낌으로 찍었지만 돌아와 다시 보면 똑같은 사진들... 그걸 또 버리지 못하고 포스팅하는 뻔뻔함.ㅎ

물방울을 형상화한 듯한 조형물들이 눈길을 끈다

이것도 이웅휘 작가의 작품인가?

아직 산뜻한 게 최근에 제작해 설치해 놓은 듯... 

청룡과 황룡이 지키고 있는 범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는 뭘까?

용담호 취수탑

댐의 중간쯤에서 행정구역이 용담면 월계리에서 안천면 삼락리로 바뀐다

댐을 건너면 좌측에 '한국수자원공사 용담댐 관리단', 우측에 '용담댐 물 문화관'이 자리 잡고 있다

잠시 '물 문화관'으로 들어가 보자

내부에는 물을 주제로 한 여러 가지 전시물들이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 대충 훑어본 걸로는 뭐가 뭔지 모르겠다.ㅠ

술에 취한 인어의 꿈.^^

원래 11-1구간 '용담댐 감동벼룻길'만을 탐방한다면 이곳 '물 문화관'에서 '감동마을'까지 왕복하여 10km 코스인가 보다

용담호 선착장

용담댐 조각공원에서 보는 용담면 월계리 방향

조각공원에 전시된 이웅휘 작가의 작품들

용담호 준공 기념탑

조각공원을 벗어나면 고원길은 구곡마을회관까지 약 2.5km 구간을 13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다

삼락교

선답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과거에는 삼락교 직전에 좌측 방향으로 진입하여 지장골까지 우회하였던 것 같은데 고원길 방향 표지판은 삼락교를 직진하여 건너도록 안내하고 있다 

삼락교에서 보는 용담댐

과거에 탐방 코스였던 지장골 방향

지장산과 지장골

앞에 보이는 수면 아래가 과거 수몰 전 삼락리 경대마을이 있던 터이다

안천면 삼락리 지도(용담댐 건설 전 수몰지역 표기)

호수 건너편 산자락 앞 수면 아래가 과거 수몰전 용담면 월계리 와정마을이 있던 자리다

뒤쪽에 희미하게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는 방향으로 보아 100대 명산에 포함된 '구봉산'일 것이다 

건너편 산능선의 형세는 흡사 용담호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악어와 닮았다

안 그래도 맨 후미로 뒤쳐져 혼자 걷는 마당에 별 걸 다 참견하며 걷는다. 이러니 갈수록 뒤처지지~ㅎ

 

용담댐 오토캠핑장

수몰민들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을지언정 눈으로 보는 용담호는 더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이면 선계의 풍경이 펼쳐지겠다

무인 카페(cafe, 삼락)

카페 뒤쪽 데크에서 보는 용담호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지만 pass 하고 지나친다

걸어가면서 보는 풍경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만큼 아름답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지점에서 건너편 조그만 섬? 사이의 수면 아래로는 수몰전 삼락리 구곡마을이 있던 터다

호수 왼쪽으로 들어가는 지점은 수몰전 삼락리 수좌골마을이 있던 터다

이곳이 삶의 터전이었던 수몰민들이 이곳에 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천지'인가?

(난 아직 백두산 천지를 가보지 않았음.^^)

온 세상이 연두연두하게 변하는 4월이나 5월에 보면 어떤 모습일까? 걷지 않고 드라이브 코스로도 괜찮겠다 

(12:10) 수몰민들이 새로 조성하였다는 구곡(九谷) 마을에 들어선다

원래의 '구곡마을'은 마을 뒷산에 아홉 개의 골짜기가 있다 하여 '구곡(九谷)'이라 불렀다 한다

펜션인가?

구곡마을 정류장

호수 쪽으로 내려가는 길

여유가 있다면 가든에 들러 붕어찜에 소주 한 잔 하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

구곡 새마을회관(경로당)

수몰되기 전의 구곡마을과 수좌골에는 청주 한 씨들이 많이 살았었다고 하였다 

 



금강물길 탐방코스
 : 가족테마공원~용담댐물문화관~구곡마을~장등마을~도라마을~중배실마을~하배실마을~망향의동산~안천소운동장(13.4km)

 

구곡마을을 지나면서 고원길은 13번 국도(안용로)를 버리고 두 시 방향의 좁은 길로 내려선다

우회하는 길로 내려가지 않고 그냥 직진하더라도 잠시 후 다시 고원길 탐방로와 만나게 된다

갈림길에서 2백여 미터를 내려오니 탐방로를 굳이 우회시킨 이유를 알겠다. 

이곳은 오늘 걷는 구간 중 수면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용담호를 볼 수 있는 장소다

만수위가 되면 바로 발아래까지 호숫물이 찰랑이겠다

우횟길로 5~6백여 미터를 걸으면 고원길은 다시 13번 국도와 연결된다

13번 국도를 따라 장등마을 방향으로 이동한다

구곡마을 지나 13번 국도를 따라 장등마을로 향한다

용담호를 따라 이어지는 13번 국도변의 가로수는 우리나라 토종 단풍나무로 조성되어 가을이면 붉게 물든 단풍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고 한다

구곡마을회관에서 15분쯤 걸으면 장등마을이 나온다. 거리로는 대략 1km 남짓 되는 듯하다

지도상에는 이곳이 '성황당재'로 표시되어 있으나 성황당은 보이지 않는다

장등마을 버스정류장

버스정류장 뒤쪽으로 국도에서 벗어나 장등마을 안쪽으로 진입하는 좁은 길이 있어 내려가려다 되돌아와 이정표를 다시 확인해 보니 그냥 국도를 따라 직진하란다   

장등(長燈)마을은 도로 아래쪽에 위치한다

원래의 장등마을은 용담댐 건설로 인하여 모두 수몰되고 현재의 마을은 이주민들이 새로 조성한 마을이다

수몰 전 마을 뒤로 산 등성이가 길게 뻗어 있어 '긴등' 또는 '진등'이라 하였다가 길 장(長)자를 써서 장등(長燈)마을이라 하였다고 한다. 진등에 있는 마을이다는 의미일 게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고향에서도 기다란 언덕을 '진등재'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국도를 따라가다 우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용담호

아래 지도를 참고하면 호수가 안쪽으로 들어온 지점이 수몰 전 장등마을이 있던 자리일 것으로 추정된다

수몰전 장등마을 위치도

물이 빠져 바닥이 드러난 호수의 모습은 황량함도 있지만 곡선의 아름다운 풍경을 맛볼 수도 있다 

장등마을 버스정류장에서 3백여 미터를 걸으니 갑자기 국도를 벗어나 왼쪽길로 들어가라 안내한다

13번 국도를 벗어나 왼쪽 좁은 길로...... '도라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무심코 걷다가 탐방로를 벗어나 직진할 수도 있겠지만 13번 국도는 잠시 후 도라마을~중리마을~하리마을을 거쳐 돌아 온 고원길과 다시 만나게 되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쇠말봉(철마봉, 지도에는 '쇄마리봉'으로 표기되어 있다)

도라마을에 가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는 '쇠말봉'이다

 

<쇠말봉 전설>

쇠말봉 정상에는 3개의 쇠로 만든 말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말머리가 마을을 향하고 있으면 1년 내내 재앙이 든다고 믿었다.

그래서 섣달 그믐날 밤에 쇠말봉 꼭대기에 올라가 말머리가 자기 마을을 향하지 않도록 돌려놓곤 했는데 그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말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포장이 안되어 있다면 길은 인적 없는 산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모양새다

입구에서 백화리 도라마을까지 2.1km 거리를 특별한 조망 없이 완만한 오름길로 계속 이어지는데 다소 지루할 수 있는 구간이다  

입구에서 약 1km 정도를 올라오니 좌측에 축사와 민가 한 두 채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나 나올 법한 야생의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다시 2~3백 미터를 더 올라오면 이런 풍경도 있다.

옛날 같으면 '주막'이 있어야 할 자리 아닌가?^^

꽃벵이 농장

청춘을 회복시켜 준다고 부연 설명까지 해놓았는데 '꽃벵이'가 무엇일까?

궁금하여 검색해 보니 꽃벵이는 '흰점박이 꽃무지 애벌레'를 말하는데 우리가 흔히 '굼벵이'라고 부르는 애벌레란다

 

동양 최고의 의서 중 하나인 '동의보감'탕액 편에 '흰점박이 꽃무지 굼벵이'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성질은 약간 차고 맛이 짜며 독이 있는 약재로 주로 악혈(惡血), 어혈(瘀血), 비기(痺氣), 눈의 군살, 눈을 뜨고도 못 보는 증세, 백막(白膜), 뼈가 부스러지거나 삔 부상, 쇠에 다쳐 속이 막힌 증세 등을 치료하며 유즙(乳汁)도 잘 나오게 한다'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오던 길을 뒤돌아 보니 또 하나의 산봉우리가 보이는데... '망바우봉(475.4m)이라고 한다

13번 국도를 벗어나 안천면 삼락리와 백화리를 잇는 '백삼로'를 30여 분 걸어 올라오니 마을이 보인다

안천면 백화리 도라마을이다

도라마을 삼거리

도라마을은 지장산에서 동남쪽으로 뻗어내린 쌍교봉 능선에 에워싸인 분지에 자리잡은 마을이다

쌍교봉 능선을 경계로 하여 능선 너머는 무주군 부남면에 속한다

도라마을 버스정류장

삼거리에서 고원길은 좌측길로 안내한다

고원길 진행 방향(도라길)

고원길은 산재되어 있는 도라마을을 빠짐없이 둘러보고 가게끔 이어진다

마을로 진입하였던 길(백삼로)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올라간다

이 길로 약 3백여 미터 올라가다 보면 도라마을을 돌아온 고원길과 다시 만나게 된다

 

도라(桃羅)마을은 마을 주위가 전부 산으로 둘러 싸여 있으며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풍수지리상 복숭아를 늘어놓은 형국이라 해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삼거리에서 좌측길로 1백여 미터를 진행하면 도라마을 회관이 나온다

이제 시골길에서 마을회관은 이방인들이 낯선 길에서 방향을 잡는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오지의 시골마을에도 신선처럼 풍류를 즐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집 앞에 작은 연못?을 파고 그 안에 조립식 정자를 들어앉혔다. 옆에는 물레방아까지 있고...

모양새가 조금 초라하면 어떠랴. 세상 걱정 다 덜어놓고 탁주라도 한잔 하며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면 되는 게지~

근데 한 여름 뙤약볕에는 그늘이 없어 좀 덥겠다.ㅎ

고원길은 '특별히 볼거리도 없는데 이렇게까지 돌려 놓을 필요가 있었나?'하고 투덜댈 정도로 마을 끝까지 올라갔다 내려가라 한다

마을 끝 돌담 삼거리에서 고원길은 거의 U턴에 가깝게 오른쪽으로 휘어진다

왼쪽으로 진입하면 과거 도요지가 있었다는 '옹골'을 지나 무주군 부남면과 경계를 이루는 지장산~쌍교봉 능선을 만날 것이다

선답자들의 기록에 의하면 도라마을 외곽으로 이어지는 이 길 주변에 동네 이름에 걸맞게 주렁주렁 메달린 복숭아와 뽕나무 오디가 풍성하였다고 하던데 지금은 삭막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도라마을의 겨울 풍경은 다소 황량해 보이지만 조용하고 차분한 멋스러움이 있다

건너편 산 아래로 조금전 지나온 마을길(고원길)이 보인다

눈 쌓인 밭 너머로 보이는 봉우리는 조금전 도라마을로 진입하면서 보았던 '망바우봉'일 것이다

길 왼쪽으로는 대형 양계장(도원축산)이 자리 잡고 있다

고원길을 걸으면서 맨땅이 훤히 드려다 보이는 민둥산이 많이 보이는 이유는 산불 때문일까? 수종 개량이나 개발을 위한 벌목 때문일까? 

도라마을로 진입했던 골짜기 방향으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구봉산'으로 짐작된다

15분 정도 걸려 '도라길'을 한 바퀴 돌아 내려오니 조금전 마을앞 삼거리에서 갈라졌던 2차선 '백삼로'와 마주친다 

이제 종착지인 '안천소운동장'까지는 3.9km가 남았고, 고원길은 '백삼로'를 따라 좌측 방향으로 이어간다

백화리 도라마을에서 중리(중배실)마을까지 가는 길은 2차선 내리막 길로 이어진다

고원길은 도라마을을 벗어나 아스팔트 포장 내리막길로 8백여 미터를 내려오다 왼쪽 방향으로 꺾여 '중배실길'로 진입한다

중배실(중리)마을로 진입하면서 하배실(하리)마을 방향으로 펼쳐진 풍경이 시원스럽다

멀리 하얗게 눈 덮힌 능선은 방향으로 봐서 진안군 상전면의 고산(좌, 875.8m)과 대덕산(우, 593.4m)을 잇는 마루금이 아닐까 싶은데 확실치는 않다

중리(中梨)마을

중리마을이 속한 백화리(白華里)에는 이화낙지(梨花落地, 배꽃이 땅에 떨어짐) 형국의 명당이 있다 하며, 배꽃이 희므로 흰 백(白)자를 써서 백화리(白華里, 華는 花와 통함)라 하였다고 전하는데

이화낙지(梨花落地)의 형국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서 중리(中梨)라 불린다고 한다

중리마을 고샅길

중리마을에는 토담집과 같은 오래된 집들이 많이 남아 있어 잊혀져 가는 추억 속의 시골마을에 와 있는 듯하다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으로 된 집도 눈에 띤다

슬레이트 지붕은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 지붕개량 사업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으로 기억된다

요즘에야 1급 발암 물질인 석면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여 정부에서 보조금까지 지원하며 철거를 권장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의 개량사업은 새마을운동의 대표적인 본보기 사업이었다

그 때는 깨진 슬레이트 조각에 삼겹살을 구어 먹으면 기름기가 쏙 빠져 맛있다며 석면 슬레이트 불판에 구운 고기를 즐겨 먹었는데도 지금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는걸 보면 세상사가 원리원칙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토석담도 정겹다

행랑채에 달린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금방이라도 삐~익 소리가 날것만 같다

독거노인 행복방

지금까지 시골길을 걸으면서 마을회관이나 노인당이 아닌 독거노인을 위해 마련된 별도의 건물은 처음 본 것 같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노인문제는 농어촌에서 더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 증거가 아닐까 싶다 

고샅길을 빠져 나오면 마을 어귀에 반듯한 건물의 마을회관(경로당)이 자리잡고 있고...

마을회관을 지나면 맞은 편에는 이화정(梨華亭)이란 현판을 단 정자가 서 있다

 

고원길 탐방로는 정자 앞으로 흐르는 개울의 둑방길을 따라 '하리마을'로 이어지지만 선답자들의 기록에 탐방로 벗어나 정자 뒷편으로 7~80 미터만 더 가면 진안군 향토문화유산인 '화산서원'이 있다는 정보가 있어 들렀다 가기로 한다

정자를 지나 낮으막한 언덕을 넘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멋진 노송 옆에 자리한 '효자 황민찬 정려각( 孝子 黃玟燦 旌閭閣)'이다

정려각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장려하기 위하여 효자·충신·열녀 등이 살던 동네에 세워 놓은 붉은 칠을 한 누각으로, 황민찬 정려각은 효자각(孝子閣)이다

 

황민찬(1876-1905)은 현령 황동규(黃東奎)의 아들로, 품성이 순하고 후덕하여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에 우애하고,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다 어머니가 병이 났을 때 자신의 손가락을 상하게 하여 피를 내고, 이를 어머니의 입에 흘려 넣었는데, 이에 하늘이 감동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이후 황민찬이 요절(夭折)하게 되자 고을에서 애석하게 여겼고, 이에 용담향교 유림들이 청원하여 1905년 정려가 내려졌으며,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화산서원'은 황민찬 정려각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의 문이 잠겨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담장 주변을 돌면서 안쪽을 들여다 보는 것으로 만족한다.ㅠ

화산서원(華山書院)

화산서원은 장수 황씨 문중의 사당이다. 조선 전기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黃喜, 1363~1452)의 영정을 안치하고, 그의 차남 황보신(黃保身)과 5대손 황징(黃澄) 등을 배향하고 있다. 

192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970년에 중수되었으며 현재 진안군 향토문화유산 유형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서원의 가장 안쪽에 있는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앞쪽 3칸은 마루, 뒤쪽 3칸은 방으로 되어 있다

정면에 '화산서원(華山書院)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고, 방에는 지방유형 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된 황희의 영정과 위패, 황보신과 황징의 위패 등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황희의 영정(퍼온 사진)

지방유형 문화재 제129호

서원 안에서 가장 낡게 보이는 건물은 서원의 필수 시설인 강당이라고 한다

밭을 사이에 두고 화산서원 맞은 편에는 열부 옥천육씨 정려(열녀각, 烈婦 沃川陸氏 旌閭)’가 있다. 

육씨(陸氏) 부인은 임진왜란 때 남편 황대성(黃大成)이 의병을 이끌고 전투에 나서자 몸종인 천개(天介)와 함께 상배실 앞 구례마을로 피난했으나, 왜군에 잡혀 욕을 당하게 되자 적을 꾸짖으며 몸종과 함께 자결하였다고 한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1699년 조정에서 정려를 내렸다. 본래 하배실 앞동산에 있었으나 1980년쯤 농로를 내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단다. 

참고로 남편인 통정대부(通政大夫) 황대성은 임진왜란 때 수백 명을 이끌고 각지에서 왜군과 싸웠던 의병장으로, 일본에 포로로 압송된 뒤 천신만고 끝에 조선으로 돌아왔으나 부인 옥천 육씨가 순절한 것을 알고 뒤따라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화산서원과 효자각, 열녀각을 둘러본 후 다시 마을앞 정자로 돌아와 고원길 탐방로를 따라 '하리(하배실)마을'로 향한다

'하리마을' 가는 길

'하리마을'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화천사(華川祠)의 강당건물인 학륜당(學倫堂)이다

학륜당은 낙안 김씨들이 덕망 있는 학자를 초빙하여 인재를 양성하던 곳으로  2016. 12. 28 진안군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전면 4칸, 측면 2칸으로 마루 벽에는 화천사 중수기와 종친회 임원록 등의 판액(板額)이 걸려있다.

화천사(華川祠)는 낙안 김씨 종중의 8대손 김빈길의 충의와 공덕을 기리기 위한 사당이다 

화천사에서 몇 발짝 내려가면 커다란 노거수가 보이고 맞은편에 하리마을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하리마을에는 버드나무 보호수가 있다고 하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앞에 있는 나무가 버드나무 보호수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버드나무가 아니다

보호수로 지정된 버드나무는 뒤에 초라하게 보이는 나무다 

버드나무 보호수

진안군에 있는 54수의 보호수 중 유일한 버드나무라고 한다

한돌쇠라는 하인이 마을의 수호목으로 심었다고 한다

안내석에는 수령 152년(1982년 보호수 지정시), 수고 20m, 둘레 4.5m라고 적혀 있다

 

하리마을회관

고원길은 하리마을에서 2백여 미터 지점에서 13번 국도를 건너 이어지다 다시 다리를 건너 오른쪽 방향으로 진행한다

오랜만에 다시 일행과 조우하고... 개울을 따라 이어가던 탐방로는 갑자기 숲속길로 들어선다

탐방로는 숲길로 5분여를 들어가 숲속에 있는 주택의 앞마당으로 이어지는데 지나가는게 민망할 정도로 개가 사납게 짖어댄다

주택을 뒤로 하고 '오얏고개'로 올라선다

오얏고개

'오얏'은 '자두'를 말함인데 주변에 자두나무는 보이지 않는다. 길 옆에 심어진 묘목이 자두나무인가?

오얏고개 정상에는 11구간 두 번째 인증 지점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오얏고개 정상에 올라서니 오늘 탐방의 종착지이며 안천면의 행정 중심지인 안천면 노성리 보한마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얏고개를 내려오다 뒤돌아 본 모습

오얏고개를 내려서니 오른쪽으로 용담호가 보인다

망향의 동산으로 오르다 뒤돌아 본 오얏고개 방향

노송 옆에 있는 비석은 수몰 실향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알았으나 내용을 보니 앞에 보이는 보한마을에 청주한씨 집성촌이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 세워놓은 것이란다

망향의 동산에서 보는 보한(輔韓)마을

보한마을은 청주 한씨가 텃자리를 잡은 곳인데 마을 이름인 보한(輔韓)도 한(韓)씨를 보필한다는 뜻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망향의 동산은 2001년 용담댐이 건설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은 수몰 실향민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위로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용담댐 건설에 따른 수몰 현황 : 11개 마을, 498세대, 2,270명, 375,709평

망향탑

전망대

전망대 위에서 본 용담호.

아쉽게도 웃자란 주변 나무들로 인하여 용담호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전망대 위에서 보는 보한마을

전망대 위에서 보는 망향탑

망향탑 뒤에는 수몰지역에서 옮겨온 비석군이 있다

망향의 동산에는 수몰지역인 안천면 삼락리 구곡마을에서 옮겨왔다는 지석묘(支石墓)도 있다

14시 52분 종착지인 안천소운동장에 도착하며 탐방을 종료한다. 

5시간 50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