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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여행

(20201005) 수원 화성 - 서남각루(화양루)에서 동북포루까지

 

카메라 이미지센서에 먼지가 끼었는지 사진에 깨알같은 얼룩이 많아 사진을 찍은 후 얼룩을 지우는 일이 은근히 귀찮고 시간을 허비하여 메뉴얼을 보고 이미지센서 클리닝을 해보려고 몇 번을 시도해 봤지만 허사다.

어쩔 수 없이 서비스센터를 찾아 서비스를 부탁하니 불과 20분도 안되어 다 되었으니 가져가라고 한다. 서비스 요금도 무료라고 하면서......

세상에~

집에서 멀지도 않은 곳에 있는 서비스센터에 맡기면 이렇게 쉽게 해결이 되는걸 그동안 그렇게 불편을 감수했다니...

사람이 게으르고 무지하면 몸이 고생이다.

 

서비스를 받은 후 날씨가 좋아 카메라 시험 작동도 해볼 겸 그동안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가까운 곳에 있는 화성에 올라가 본다

 

 

 

도청입구에서 시작하여 팔달산 산책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서삼치 아래 성벽에 다다른다.

이쪽에서 근무할 때는 이 길을 거의 매일 아침 걸었었는데...

 

 

 

 

아직 붉게 물들지는 않았지만 초가을 강한 햇살에 나뭇잎은 벌써 가을 분위기를 띠고 있다 

 

 

 

 

성안으로 들어와 먼저 서남암문 쪽으로 향하는 길. 오른쪽 성곽에 방금 성밖에서 지나왔던 '서삼치'가 보인다.

 

 

 

 

서남암문

서남암문은 화성 서남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화성의 5곳 암문 가운데 유일하게 문 위에 군사들이 머무는 포사(舖舍)를 세웠다. 이곳은 지형상 적에게 빼앗기면 성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히 포사를 만들어 침입을 대비했다. 암문에는 화공에 대비하여 오성지(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물을 담는 통)도 설치하였다. 이름은 암문이지만 성 안팎을 드나드는 통로가 아니라 용도를 거쳐 서남각루(화양루)로 나가는 문이다.

 

 

 

 

용도(甬道)

용도는 산등성이를 기어오르는 적군에 대비하여 양쪽에 성곽을 쌓고 방어하던 곳이다

 

 

 

 

서남각루(화양루)

서남각루(西南角樓)는 서장대와 팔달문의 중간지점 서남암문에서 용도(甬道)를 통해 뻗어나간 외성의 끝 부분에 있으며, '화양루(華陽樓)'라고도 한다. 서남각루는 용도 끝에 있어서 화성 방어를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구실을 하게 하였다.

 

 

 

화양루를 보고 용도를 따라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안쪽에서 본 서남암문

 

 

 

 

이제 서장대로 올라가 보자

 

 

 

 

팔달산을 처음 올랐을 때 깜짝 놀랐던게 팔달산의 노송들이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산답지 않게 팔달산에는 아름다운 노송들이 많다.

 

 

 

 

서포루(西舖樓)

서포루는 서암문과 서3치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서포루는 서장대 쪽으로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기 위해 만들었다. 

 

 

 

효원의 종각

효원의 종각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심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수원시가 1991년 만들었다.

 

 

 

서장대 가는 길

 

 

 

 

서암문 위에서 보는 서장대

 

 

 

 

서암문(西暗門)

서암문은 화성 서쪽 팔달산 꼭대기 성벽에 설치한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서암문은 성벽을 안쪽으로 90도 꺾어 들어가도록 쌓고 그 사이에 문을 내 바깥에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화공에 대비하기 위한 오성지나 적을 감시하기 위한 비예 같은 별도의 방어 시설을 두지 않고 지형의 이점을 최대한 살렸다.

 

 

 

서장대(西將臺)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자리 잡은 군사 지휘소이다. 화성에는 두 곳의 장대가 있는데 동장대는 평상시 군사들이 훈련하는 장소로 쓰고 서장대는 군사 훈련 지휘소로 썼다. 서장대는 시야가 트여 있어 멀리 용인 석성산 봉화와 현륭원 입구까지 한눈에 살필 수 있었다고 한다. 

서장대는 아래층은 사면 3칸, 위층은 1칸으로 위로 가면서 좁아진 형태다. 아래층은 장수가 머물면서 군사 훈련을 지휘하고, 위층은 군사가 주변을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정조는 서장대에서 군사 훈련인 성조(城操)를 거행했는데 1795년의 행사 모습이 그림으로 남아 있다. 

위층 처마 밑에 걸린 '화성장대(華城將臺)'와 '시문'현판은 모두 정조의 작품이다. 1795년 성조가 끝난 뒤 정조는 '화성장대'현판의 글씨를 직접 쓰고 만족스럽고 기쁜 마음을 시로 표현했다. 화성에서 유일하게 정조가 지은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나는 아직 화성장대시문은 보지 못했다.)

* ‘어제화성장대시문’은 정조가 1795년 서장대에서 군사훈련을 보고 느낀 소회를 시로 새겨 서장대에 걸었던 것으로, 정조는 5언 8구에 화성의 장대함과 군사들의 의기에 대한 만족감과 함께 국정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했다.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서장대와 서노대

 

 

 

 

서장대

 

 

 

 

 서노대(西弩臺)

서노대는 기계식 활인 노(弩)를 쏘기 위해 높게 지은 시설로 군사지휘소인 서장대를 지키는 역할을 한다. 노대는 적의 동향을 살피고 깃발을 이용해 적의 위치를 알리는 용도로도 쓰였다. 

화성에는 서노대와 동북노대가 있다. 서노대는 화성의 서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달산 꼭대기에 있어 적을 감시하기에 적합하다. 팔각형의 몸체가 위로 가면서 줄어드는 안정적인 형태로, 안에는 흙을 채우고 겉은 벽돌을 붙혔으며 여덟 방향의 모서리는 돌로 박아 마감하였다.

 

 

 

서장대에서 보는 수원 시가지

영통, 동탄 방향

 

 

 

광교신시가지 방향

아래로 화성행궁이 보인다

 

 

 

광교산 방향

 

 

 

 

서포루(西砲樓) 안쪽

서포루는 팔달산 중턱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와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다. 서포루는 경사지에 지었기 때문에 평지에 설치한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보다 규모를 작게 만들고, 화포와 총을 쏘는 구멍의 숫자도 줄였다.

포루는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에는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는 구멍이 있고, 상층에는 누각이 있다. 서포루 상부의 누각은 복원했으나 벽돌로 만든 하부에는 창건 당시의 모습이 일부 남아 있다.

 

 

 

서포루(西舖樓) 바깥쪽

 

포루(砲樓)와 포루(舖樓)

포루(砲樓)는 성벽밖에 3층으로 지은 벽돌건물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두어서 그 안에 화포를 숨겼다가 위아래를 한꺼번에 공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남포루(南砲樓), 동포루(東砲樓),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北西砲樓), 서포루(西砲樓) 등이 있다.

 

포루(舖樓)는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것인데 이것을 포(舖)라고 한다. 이것은 치성의 군사들을 가려 적이 아군의 동향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세운 성제의 하나이다. 화성에는 동북포루(東北舖樓), 동일포루(東一舖樓), 동이포루(東二舖樓), 북포루(北舖樓), 서포루(西舖樓) 등이 있다.

 

 

팔달산 중턱을 가로지르는 순환도로는 차량통행이 금지되어 있어 산책로로 인기가 높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매년 이맘 때면 서북각루에서 화서문 사이의 성곽 밖에는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서북각루(西北角樓)

서북각루는 화서문에서 서장대로 오르는 언덕위에 있으며, 동남각루와 마찬가지로 높은 곳에 위치해 주위를 관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서북각루에서부터 화서문 사이의 성곽은 지금 보수공사가 진행중이다.

 

 

 

서북각루 주변의 억새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서북공심돈(西北空心墩)

서북공심돈은 화성 서북쪽에 세운 망루로 주변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시설이다.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라는 뜻으로, 우리나라 성곽 중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보통 돈대는 성곽과 떨어진 높은 곳에 세워 적을 감시하는 시설이나, 서북공심돈은 서북쪽 성벽이 꺾이는 위치에 설치했다. 치성 위에 벽돌로 3층의 망루를 세우고 꼭대기에는 단층의 누각을 올려 군사들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하고,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뚫어 공격 기능까지 갖추었다.

조선 정조 21년(1797) 정월, 완성된 화성을 돌러보던 정조는 서북공심돈 앞에 멈춰 "우리나라 성곽에 처음 지은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가"며 매우 만족스러워 했다. 화성에는 모두 세 곳에 공심돈을 세웠는데 서북공심돈만이 축성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화서문(華西門)

화서문은 성의 서문이다. 동남으로 행궁과 460보 떨어졌으며, 홍예와 문루의 제도는 모두 창룡문과 같다.  안과 바깥 면 모두에 평평한 여장을 설치하고 외면에는 방안 총혈 19개의 구멍과 활 쏘는 구멍 6개를 뚫었다. 나머지는 모두 동옹성과 같다.

 

 

 

북포루(北舖樓)

북포루는 북서포루(砲樓)와 서북공심돈 사이에 있는 치성 위에 군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누각을 지은 시설이다. 치성은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모두 15곳의 치성이 있는데 그 중 중요한 5곳의 치성 위에 동1포루, 동2포루, 서포루, 북포루, 동북포루를 만들고 적의 동향을 감시했다.

북포루는 화성에거 가장 평탄하고 시야가 트인 곳에 있어서 주둔하는 군사의 수도 많고 규보도 크다. '군포루'라고도 불렀다. 

 

 

 

북서포루(北西砲樓)

북서포루는 장안문 서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다라 크기를 달리했다. 그 중 평탄한 곳에 지은 북서포루가 가장 높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는 안팎의 지붕 형태가 다르다. 

 

 

 

북서포루(北西砲樓)

 

 

 

 

장안문 방향

 

 

 

 

북서적대(北西敵臺)

북서적대는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장안문 좌우 적대에는 현안(성벽의 바깥에 위에서 아래로 낸 홈) 세 줄을 설치한 반면 팔달문 적대에는 두 줄을 설치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장안문(長安門)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북문이다. 정조는 장안의 의미를 '북쪽으로 서울의 궁궐을 바라보고, 남쪽으로 현륭원(융릉)을 바라보며 만년의 편안함을 길이 알린다.'라고 풀이했다. 문 밖에 항아리 모양의 옹성(성을 지키기 위하여 성문 밖에 쌓은 작은 성)을 만들고 방어를 위해 좌우에 적대를 세웠다.

장안문은 남문인 팔달문과 서불어 화성에서 가장 웅장하고 높은 격식을 갖춘 건물이다. 

 

 

 

북서적대

 

 

 

 

옹성의 입구에서 찍은 장안문

 

 

 

 

장안문

 

 

 

 

북동적대(北東敵臺)

북동적대는 장안문 서쪽에서 성문에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방어 시설이다. 화성에는 장안문과 팔달문 좌우에 적대를 설치했는데 현재 장안문에만 남아 있다. 장안문 좌우 적대에는 현안(성벽의 바깥에 위에서 아래로 낸 홈) 세 줄을 설치한 반면 팔달문 적대에는 두 줄을 설치했다. 현안은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의 동향을 살피고 동시에 공격도 가능하도록 만든 시설이다. 적대는 우리나라 성곽 중 유일하게 화성에만 있다.

 

 

 

북동치(北東稚)

북동치는 장안문 동쪽 북동적대에붙여서 세운 치성이다. 치성은 성벽의 바깥으로 덧붙여 쌓은 시설로,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하는 역할을 했다. 성벽에 8곳, 용도에 2곳의 치성이 설치되어 있는데 지형에 따라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북동적대 위치에서 성곽이 급하게 꺾이기 때문에 북쪽을 방어하기 위해 적대에 치를 덧붙였다. 북동치는 장안문을 지키는 중요한 위치이므로 가장 크게 치성을 만들고,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는 총안과 타구(성벽 위의 낮은 담장인 여장과 여장사이의 열린 부분)를 설치했다.

 

치(稚)

치는 철(凸)자 모양으로 성벽 밖으로 돌출시켜, 좌우 방향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 시설물 중 하나이다. 치라는 이름은 '꿩'이란 뜻으로 본래 꿩은 제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를 잘한다는 까닭에서 그 이름을 땄다.

화성에는 15개의 치(稚)가 있는데 남치(南稚), 용도일치, 용도이치, 서일치(西一稚), 서이치(西二稚), 서삼치(西三稚), 동일치(東一稚), 동이치(東二稚), 동삼치(東三稚), 북동치(北東稚) 등 10개와 치성 위에 누각을 세운 동북포루(東北舖樓), 동일포루(東一舖樓), 동이포루(東二舖樓), 북포루(北舖樓), 서포루(西舖樓) 등 5개가 있다.

 

 

 

 

북동포루(北東砲樓)

북서포루는 장안문 동쪽에 설치한 화포를 갖춘 시설이다. 화성에는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 5곳의 포루가 있었는데 주변 지형 조건에 다라 크기를 달리했다. 

포루는 벽돌로 만든 3층 구조로 아래 두 층은 화포나 총을 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상층은 군사들이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누각을 만들었다. 북서포루와 북동포루는 안팎의 지붕 형태가 다르다. 

 

 

 

 

 

화홍문(華虹門)

화홍문은 성의 북수문(北水門)이다. 화홍문은 화성의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홍수를 대비하여 수원천 북쪽에 세워진 수문이다.

 

 

 

방화수류정(訪華水柳亭) 혹은 동북각루(東北角樓)와 용연(龍淵)

방화수류정은 주변을 감시하고 군사를 지휘하는 지휘소와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정자의 기능을 함께 지니고 있는 곳이다. 여기에서 '방화수류'는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 노닌다'는 뜻이다.

용연은 방화수류정 앞에 있는 연못이다.

 

 

 

동북포루(東北舖樓)

화성의 5개 포루 중의 하나로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 지형은 주변보다 높아서 동쪽으로 동암문과 동장대, 북쪽으로 북암문과 방화수류정까지 불 수 있다.

 

 

 

 

방화수류정과 용연

 

 

 

 

용연에서 보는 동북포루

 

 

 

 

방화수류정과 용연

 

 

 

 

동북포루

 

 

 

 

북암문(北暗門)

북암문은 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이다. 암문이란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설치하여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문을 의미한다. 화성에는 5곳의 암문이 있었는데 모두 벽돌로 만들었다. 북암문은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었다. 문 위에는 몸을 숨기고 적을 감시하기 위해 여장을 세웠는데 반원형은 원여장, 장방형은 비예라고 부른다. 북암문은 축성 당시의 모습이 잘 남아 있다.

 

 

 

 

 

 

 

 

 

동북포루 쪽에서 본 서장대 방향

 

 

 

 

 

 

 

 

 

 

동북포루

 

 

 

 

 

 

 

 

 

동북포루 쪽에서 본 동장대 방향의 성곽

 

 

 

 

동북포루의 일몰 광경

 

 

 

 

동장대 방향의 성곽

 

 

 

 

동북포루에서 본 일몰 광경

 

 

 

 

동북포루에서 본 일몰 광경

 

 

 

 

화홍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방화수류정

 

서남각루(화양루)에서 동북포루까지 성곽 여행 끝.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다.